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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고(故) 전유성 선생님을 출판계 행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였다. 어릴 때부터 TV에서 보아온 유명인인 데다 그의 코미디를 좋아했던 필자는 약간의 긴장을 이겨내며 말을 꺼냈다. "사진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는 선뜻 그러자며 필자의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를 가져가 뒷걸음질하더니 우리 사진을 찍어주려고 했다. 잠깐의 당황 후 그 유머를 이해한 우리 일행이 웃음을 터뜨리자 이내 카메라 프레임 안에 함께 서주었다. 주어나 목적어의 생략이 난무하는 고맥락 언어인 한국어에서 매번 재밋거리를 찾아내는 그의 농담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일이다. 이후 문화예술계 지인들과의 친분이 겹치면서 함께 주기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오랜 인연이 되었다.소액주식
9월2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개그맨 전유성의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김정렬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작은 사진)故 전유성씨 ⓒ연합뉴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게 내 노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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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어울릴 때면 항상 재미있는 아이디어나 잊지 못할 어록을 심상하게 쏟아냈지만 막상 당사자는 그 일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와의 대화에 감화받았다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전해 들으면 대체로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생각을 나눠주고 그만 잊어버리는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렇게 하면 재미있주식종류
지 않을까?' 하는 말과 함께 뭔가 새로운 구상의 장이 펼쳐지고 나면, '누구든 가져가서 해보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는 아이디어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심야극장이라는 개념을 처음 떠올린 것이라든지, 각기 다른 높이의 지하철 손잡이를 제안한 것처럼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게 훨씬 많았지만, 그는 아이디어의 출처를 밝히는릴게임바다이야기
일에 관심이 없었다. 이건 당시의 필자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얼리어답터들이 지식 공유의 세상이 온다며 미래를 읽어낼 때 그것을 설파하는 사람들조차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본래 지식과 아이디어는 철저한 보안을 통해 독점을 유지해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개인 미디어 플랫폼이 자리 잡릴게임무료
고서야 사람들이 비로소 알게 된 것, 즉 지식 자산을 나누는 일이 자신에게도 결국 득이 된다는 것을 그는 어떤 형태로든 일찍 내재화해 실천한 것이었다.
그는 움켜쥐지 않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부를 이루지는 못했다. 여러 차례 직접 들었던 유일한 재정 계획은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게 내 노후 준비'라는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중년을 전후해 가진 것을 지키고 더 많이 불려놓기 위해 애를 쓴다. 그건 틀린 방향은 아니지만, 불안에 사로잡혀 나누는 데 인색해지고 변화에 방어적인 이들의 노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면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노후에 가장 행복한 상황은 다양한 나이대의 괜찮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 일이 가능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적 빈곤이 전처럼 흔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밥이나 얻어먹겠다고 불편한 만남을 이어나갈 사람은 없다. 타인과 자발적인 연결을 유지하는 동기는 '용건'과 '재미'다. 자신이 가진 것과 가질 것에 집착하며 노후를 사는 이들이 가지기 힘든 면이다. 그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실천으로 타인과 연결될 용건을 일상적으로 만들어냈다. 방송 밖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기획자로서 연극, 클래식 공연, 마술, 스탠딩 코미디, 책 집필 등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들에게 아이디어와 조언, 실질적인 도움까지 주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일로 연결되었다. 주변에는 언제나 각계각층의 다양한 나이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지막 투병에서 산소호흡기 달고도 농담을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 외에 몇 가지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에 이룬 것들에 기대지 않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 나이로 대접받으려 들지 않는 것,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것 등이다.
십여 년 전 필자는 좀처럼 타인이 공감할 수 없는 종류로 힘든 적이 있었다. 당시 열네 살이었던 딸이 자신의 의지로 혼자 유학길에 올랐는데 예정에 없던 이른 독립이라 몹시 헛헛했다. 그건 주관적인 감정이라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대화를 하다 딸의 안부를 묻는 전 선생님에게 아이가 어느 나라로 공부하러 갔다는 정도로만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 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가게 될 줄 알았던 필자는 잠시 후 이런 답을 들었다. "어머니를 자주 찾아가지도 않았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근처 지날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이제 저기에 어머니가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 뒤에 '남 작가도 그런 마음이겠지'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억은 거기까지로 끊겨있지만 놀랐던 감정만큼은 생생하다. 남이 하는 말의 행간을 깊이 읽고 가장 적합한 위로의 말을 해주는 어른을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 현실에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 에피소드 역시 그는 곧 잊었을 것이고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비슷한 기억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그는 '기인(奇人)'이라고 불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누구나 생각하는 재미있는 일을 현실에서 실천만 할 뿐인데 그게 왜 기이하고 별난 일이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고 일상에서 도를 넘는 법이 없었다. '오랜만에 보니 많이 늙으셨네요' 같은 말을 인사로 하는 동년배들의 무례를 성토하는 상식인이었다. 청도나 남원에서 자택에 손님으로 묵어가는 지인들에게는 반드시 손수 아침상을 지어 내어주기도 했다. 사람들이 그를 기인이라고 부른 것은 모두가 달려가는 경쟁의 길에서 늘 벗어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에서 희극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는 '개그맨'이라는 명칭은 그가 도입한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웃기고 연기도 잘하는 다른 동료들과 경쟁하지 않고 '유일해서 1등일 수밖에 없는 개그맨'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계기였다.
트랙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의 걷기는 경주가 아닌 산책이 된다. 성취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겠다는 인생관이 성실한 실천으로 이어지면 업적이 된다는 것을 그의 삶이 보여주었다. '개그맨이 되어버린 천재'라고 불리던 인물이니 가능했던 거 아니냐고 한정하기에는 그의 영향을 받아 삶의 양태가 바뀐 사람이 너무나 많다.
마지막 투병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도 농담을 했다는 그는 일찌감치 세운 노후 계획대로 일을 하다가 수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한 시대의 천재가 남긴 유산은 모두가 이야기하는 기념비적인 업적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영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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